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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I 이슈

화평옹주가 살았으면 사도세자도 살았을까?

by #§☆▒※‡@△◎№*&†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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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결국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관계가 갈수록 악화되는 걸 보면서 '화평옹주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안타까워했습니다. 

 

화평옹주 

영조 3년(1727년)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와 영빈 이씨 사이의 1남 6녀 중 장녀로 태어난 딸입니다. 화평옹주는 영조가 가장 아끼고 사랑한 딸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준다고 말이죠.

 

그녀의 남동생이 바로 사도세자입니다. 여동생은 화협옹주와 화완옹주죠. 요즘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익숙한 이름들입니다. 이 외에도 일찍 세상을 떠난 여동생 3명이 더 있습니다.

화평옹주, 화엽옹주(출처-드라마'대왕의길')

5살이 되던 해 화평옹주가 천연두를 앓자 영조는 딸의 쾌유를 위해 모든 형벌의 집행을 정지시킵니다. 당시 천연두를 앓으면 부정탈만 한 어떤 행동도 하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었기 때문이죠. 다행히 화평옹주의 병은 나았고 그녀를 치료한 사람들을 상을 받았습니다.

 

동생들과 사이가 좋았던 화평옹주는 성품이 어질고 온화했다고 합니다.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화평옹주가 슬기롭게 사도세자와 영조 사이를 중재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생전에는 사도세자와 영조, 부자 사이가 그럭저럭 괜찮았다고 합니다.

화평옹주(출처-드라마'대왕의길')

영조는 화평옹주에게 이현궁을 주려고 했는데요. 이는 인조가 즉위 전에 살던 어의궁보다 더 커 논란이 되었습니다. 옹주에게 너무 과하다는 간언이 있었지만 영조는 이를 듣지 않고 강행합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을 알게 된 화평옹주는 이현궁은 자신에게 과하다며 받지 않겠다고 하죠.

 

영조 14년(1738년) 화평옹주는 12세의 나이에 예조 참판 박사정의 아들인 박명원과 혼인을 합니다. 원칙적으론 옹주가 혼인을 하면 하가 해야 하지만 영조가 그녀를 너무나 아껴 예외적으로 4년간 궁 안에 살게 합니다.

 

영조가 총애했던 화평공주는 출산을 하다 목숨이 위태롭게 됩니다. 영조 24년(1748년) 6월 24일 위독해진 그녀는 영조에게 다시는 세상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매우 놀란 영조는 화평옹주의 집으로 향하지만 그녀는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후사 없이 2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화평옹주 묘

영조는 화평옹주의 빈소에서 밤을 새우며 통곡합니다. 환궁을 권유한 신하들의 말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화평옹주의 장례를 준비할 때 영조가 내린 성대한 물건들은 국장에 버금갈 정도였습니다. 호화스럽게 딸의 장례를 치르려는 영조에게 너무 지 난치다고 신하들은 간언을 합니다. 하지만 영조는 이를 듣지 않고 그들을 파직시킵니다.

 

화평옹주의 죽음은 사도세자에게는 큰 불행이었습니다. 그녀가 요절하면서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를 중재해줄 사람이 사라지게 된 거죠. 결국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는 '임오화변'이 일어나게 됩니다.

 

한중록에 있는 기록입니다. 

'화평옹주 돌아가신 후에는 위에서 과한 행동을 하시거나 자애가 부족하셔도 '참으시어 그리 마소서' 할 이가 없으니 점점 영조의 자애는 부족하고 경모궁(사도세자)께서는 두렵기가 날로 심하시니 자식 된 도리를 점점 못 차리시니라'

 

만약 화평옹주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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