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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후궁 - 원빈 홍씨, 화빈 윤씨, 수빈 박씨

by #§☆▒※‡@△◎№*&† 2021.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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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정조와 의빈 성씨의 사랑이야기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조의 다른 후궁들도 주목받고 있죠. 후사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이 있음에도 후궁을 들여야 했던 정조, 그의 후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원빈 홍씨 

원빈 홍씨 (1766년~1779년) - 정조의 첫번째 간택 후궁

출처- 원빈 홍씨(출처-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홍국영의 여동생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홍국영은 정조 즉위 초기 최고의 권력을 가졌었죠. 원빈 홍씨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 씨와 같은 풍산 홍씨로 그녀와는 먼 친척으로 11촌 고모와 조카 관계였습니다.

 

정조 2년(1778년)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에게 자식이 없자 왕실의 후사를 위해 대왕대비 정순왕후는 간택을 명합니다. 당시 정조의 총애를 받던 홍국영은 여동생 홍씨를 후궁에 오르게 했죠.

 

원빈 홍 씨는  조선역사상 최초로 삼간택과 가례를 거쳐 처음부터 빈으로 입궁한 후궁입니다. 정조의 정비인 효의왕후가 생존해 있음에도 계비를 맞아들일 때의 가례를 치렀으며 약방과 조정의 문안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나이 13세에 원빈에 봉해지죠. 빈호에 '으뜸 원'자를 썼는데 이는 정실을 뜻했기에 왕비인 효의왕후의 심기는 불편했습니다.

 

[ 원빈 홍씨 죽음 ]

원빈의 작호와 성대한 예식을 치르며 숙창궁의 궁호까지 받고 입궐한 원빈 홍씨는 궁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정조 3년(1799년) 5월 7일 14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홍덕로(출처-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당시 원빈 홍씨의 오빠, 홍국영은 그 방자함이 날로 극심했습니다.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 따르면 홍국영은 원빈 홍씨가 죽자 그녀의 죽음의 배후로 정조의 정비인 효의왕후 김씨를 의심하여 날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비의 나인들을 혹독하게 고문했다는 기록도 했습니다.

 

화빈 윤씨

화빈 윤씨 (1765년~1824년)- 정조의 두 번째 간택 후궁으로 판관 윤창윤의 딸로 본관은 남원

화빈 윤씨(출처-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정조 4년(1780년)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는 소생이 없고 첫 번째 후궁인 원빈 홍씨마저 간택된 지 1년도 안돼 세상을 떠나자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는 후궁 간택을 청합니다.

 

정조 4년(1780년) 3월 10일 삼간택 후 화빈 윤씨가 최종 간택되어 화빈의 빈호와 경수의 궁호를 받고 입궁하게 됩니다.

 

[ 화빈 윤씨의 상상임신 ]

화빈 윤씨(출처- 드라마'이산')

정조 5년(1781년) 음력 1월 17일 화빈 윤씨가 임신하여 산실청이 설치됩니다. 같은 해 음력 11월 2일 그녀의 해산을 기다리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출산의 기록은 없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상상임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조 6년(1782년) 음력 9월 7일 정조가 가장 사랑한 여인 의빈 성씨가 화빈 윤씨 입궁 후 승은을 받고 문효세자를 낳습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입궁한 화빈 윤씨는 자신보다 12살이나 많은 의빈 성씨가 아들을 낳은 것을 지켜보며 질투심에 사로잡힙니다.

 

조선시대 왕실 여자의 투기는 큰 흠이었습니다. 화빈 윤씨의 투기가 알려지며 그녀의 거처는 따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후사를 위해 수빈 박씨가 간택됩니다.

 

[ 화빈 윤씨 독살설 ]

당시 화빈 윤씨는 23세의 나이로 충분히 임신이 가능한 나이였습니다. 때문에 정조가 새로운 후궁을 들이지 않고 후사를 위해 그녀를 가까이할 만도 했죠. 하지만 투기하는 행동은 화빈 윤씨는 그 기회를 놓치게 된 겁니다.

 

당시 어린 문효세자가 세상을 떠나고 친모인 의빈 성씨마저 만삭의 몸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독살설이 제기됩니다. 결국 화빈 윤씨의 외숙부 조시위가 저주하고 독살하였다는 의혹을 받아 유배를 가게 됩니다

 

그 후 궁에서 숨죽여 살던 화빈 윤씨는 순조 24년(1824년) 6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수빈 박씨 

수빈 박씨 (1770년~1822년) -  가난한 선비의 딸이었지만 정조의 후궁이자 왕의 어머니로 산 수빈 박씨

수빈 박씨(출처- 드라마 '이산')

그녀는 정조의 네 번째 후궁이자 마지막 간택 후궁입니다. 명문가 반남 박씨의 여식으로 정조 11년(1787년) 삼간택을 거쳐 입궁한 후 곧바로 빈으로 책봉됩니다. 당시 수빈 박씨는 18세, 정조는 36세의 나이였습니다.

 

수빈 박씨는 세도가의 자식이 아닌 가난한 집안 딸이었기 때문에 정조는 안도했습니다. 후궁인 된 그녀는 사치를 멀리하고 처녀시절처럼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성품이 어질고 행동이 조신하였습니다.

 

왕대비 정순왕후, 효의왕후, 혜경궁 홍씨를 잘 모셔 왕실의 복덩이라 불렸습니다.

 

[ 순조의 어머니 ]

정조 14년 (1790년) 수빈 박씨는 원자를 낳습니다. 제23대 왕 순조를 낳은 겁니다. 그리고 3년 후 숙선 옹주까지 낳으며 슬하에 1남 1녀를 둡니다.

순조(출처- 드라마 '이산')

원자를 낳았음에도 초심을 잃지 않은 수빈 박씨는 작은 천조각 하나도 궁녀들이 버리지 못하게 할 만큼 절약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원자가 세자로 책봉된 후 아첨하는 무리들이 그녀에게 귀중품을 진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수빈 박씨는 이들을 의금부에 잡혀하게 하며 귀감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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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이런 수빈 박씨를 '어질 현' 현빈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총애했습니다. 그녀의 친정에 친필 편지로 안부인사를 전할 정도였죠.

 

조선시대 유일하게 자기 아들이 왕이 된 걸 지켜본 후궁이 바로 수빈 박씨입니다. 1800년 남편 정조가 승하하고 아들 순조가 11세에 보위에 오른 것입니다. 아들이 왕이 된 후에도 그녀는 대왕대비 정순왕후, 왕대비 효의왕후, 혜경궁 홍씨에게 하루 세 차례 변함없이 문안을 드립니다.

 

순조 22년(1822년) 수빈 박씨는 창덕궁 보경당에서 5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사후 그녀는 '행실이 중외에 드러남'을 '현' '덕을 베풀고 의로움을 간직함'을 '목' '현목수빈'이라는 시호가 붙습니다.

 

아들인 순조는 왕비가 아닌 수빈 박씨를 그에 준하는 예로 장례를 치르고 싶어 했습니다. 장례 후 3년 동안 흰옷을 입었는데 이를 반대한 사람은 유배를 보냈다고 합니다.

 

정조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의빈 성씨의 이야기입니다.

정조 의빈 성씨 - 진짜 이야기

 

정조 의빈 성씨 - 진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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