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영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정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궁이 있습니다. 바로 숙의 문씨입니다.
옷소매 붉은 끝동 숙의문씨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의 후궁이자 서녀 화령옹주와 화길옹주의 생모입니다.
궁녀 출신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효장세자의 부인인 현빈 조씨가 영조 27년( 1751년 ) 음력 11월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에 며느리를 조문하기 위해 빈전을 찾던 영조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었습니다. 영조는 맏며느리인 현빈을 무척이나 아꼈고 때가 상중이었기에 이런 그의 행동은 예법에는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영조 28년(1752년) 문씨는 첫딸 화령옹주를 낳고 이듬해 정4품 소원에 책봉됩니다. 그리고 영조의 총애는 계속되죠. 영조 47년(1771년) 문씨는 종 2품 숙의로 진봉 됩니다.
숙의 문씨는 아들을 낳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사도세자를 견제하며 자주 모함을 했다고 합니다. 사도세자 역시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형수 현빈 조씨는 사도세자를 아꼈던 왕실 여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위안이 되었던 형수의 상중에 아버지가 궁녀를 후궁으로 들인 게 좋을 리가 없었죠.
한중록에 따르면 "문씨가 임신한 아이가 아들이면 세자가 교체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합니다. 영조가 문씨를 총애했고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는 최악이었기 때문이죠.
문씨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간악한 걸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영조만 모른다고 할 정도였죠. 심지어 숙의 문씨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에게 대들기까지 했죠. 이로인해 인원왕후에게 회초리까지 맞았습니다.
숙의 문씨는 결국 아들을 낳지 못했고 권력에서 점점 멀어져 갔죠. 그리고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왕위에 오릅니다.
정조는 숙의문씨가 본인의 오라버니인 문성국과 재상 김상로 등과 결탁하여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를 이간질했다는 혐의로 숙의 문씨의 작위를 삭탈하여 사저로 내쫓았습니다. 폐서인이 된 거죠. 이후 숙의 문씨는 문녀로 불리게 됩니다.
문성국은 노비가 된 후 부인과 함께 처형하고 문씨의 어머니는 노비가 돼서 제주도로 보내집니다. 그리고 영조의 국상이 끝나자 정조는 문씨를 사사하라는 명을 내리죠. 영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정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거죠.
조선시대 후궁들의 이야기는 참 흥미롭습니다. 정조의 후궁 이야기는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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